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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하게 살기


하이타니 겐지로를 일본의 권정생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분이 있다. 올곧은 동화작가로서 살았고, 가난하거나 약한 사람의 편에 서서 글을 썼으며, 대중의 사랑을 크게 받았다는 공통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권정생 선생님보다 이오덕 선생님과 더 닮은 작가가 아닌가 싶다. 17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하며 바른 ‘글쓰기’를 하고, 아이들의 글을 엮어 책을 펴냈다. 아이들이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글을 쓰게 한 뒤 그 글을 귀하게 여긴 것이 이오덕 선생님과 매우 닮았다. 어린이를 가르칠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서로 배우는 관계로 여긴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보니 하이타니 겐지로의 글에는 이오덕 선생님 글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뛰어난 글이 중간 중간 인용되어 있다. 권정생 선생님 글에서는 보기 어려운 지점이다. 하이타니 겐지로가 40대 무렵에 발표한 64편의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간디가 타고르에게 했던 말인 “타고르, 육체노동을 해서 빵값을 버시오. 그 누구도 노동의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않소.”를 직접 실천하기 위해 아와지 섬으로 이주해 스스로 몸을 움직여 먹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섬 생활에서 느끼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생명 존중을 느낄 수 있다. 2부는 애국심이나 교과서 문제 같이 점점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정치 사회 상황을 비판하고 있다. 거꾸로 가는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많이 닮았다. 3부는 어린이한테 배운다며 어린이가 지닌 상냥함에 대해 풍부한 사례를 보여 주고 있다. 천상 교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4부는 자신의 문학 작품에 관한 이야기나 좋아하는 작가 등 문학론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속의 상상력은 한마디로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이다.”는 말이 깊이 와 닿는다. 공통어(나는 표준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는 숙명적으로 차별성을 갖는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흔히 ‘사투리 되살리기’라는 말을 하는데, 원래 모든 말은 사투리다. 그런 당연한 사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어가 엉망이 되는 것이다. (149쪽) 나는 젊은 선생님들에게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풍부한 전문적 지식이 아니라 자신을 미숙한 인간이라고 인정하고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나가겠다는 결의가 아니겠냐고 곧잘 말한다. (237쪽) 어린이가 지닌 상냥함의 근원은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느끼는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평등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그런 사상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 보입니다. (244쪽) 하니타니 겐지로의 글을 읽는 재미도 좋지만 중간 중간 소개하고 있는 아이들 글이 더 재미있다. 이를테면 6학년 다키나미 게사오는 「욕조의 모래」에서 “아빠가 목욕을 하고 / 나왔다 / 내가 그다음에 들어갔다 // 욕조 뚜껑을 여니까 / 욕조에 모래가 조금 있었다 / 우리를 위해 / 일했기 때문이다” (109-110쪽)하고 썼다. 어린이의 깊은 마음이 감동을 준다. 2학년 구로다 마코토는 「흉내」에서 “모두가 몰래몰래 옆 사람의 / ‘그림’이랑 ‘시’를 흉내 내지만 / 나는 흉내 내는 게 제일 싫어 / 남이 발명한 것을 / 그대로 따라 하는 건 나빠 / 모두의 마음속에는 / 검은 옷을 입은 흉내쟁이 귀신이 / 히히히 웃으며 살고 있을 거야” (272쪽) 하고 썼다. 마코토는 학교에서 포기한 아이였다고 한다. 덤프트럭이 다니는 찻길에 드러눕기도 하고 홈통을 타고 올라가 선생님들을 질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문제아가 이런 멋진 시를 썼다. 이오덕 선생님의 제자라고 해도 좋을 어린이다.
상냥하게 살기 는 17년간의 교사 생활을 통해 아이들에 대한 낙천성과 희망을 발견하고 문학적으로 형상화시킨 일본의 대표 작가이자 교육 실천가 하이타니 겐지로가 세상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40대 무렵에 발표한 64개의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마흔 살 무렵,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아와지 섬으로 이주해 스스로 몸을 움직여 먹고 살아가는 작가가 자연 가까이에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야기, 점점 우경화되는 정치 문제에 대해 깊은 걱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점점 오만해지는 인간들을 경계한 글들을 발표한다. 또한 아이들에게 배운다는 자신의 교육관과 자신의 문학 작품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 있어 하이타니 겐지로라는 거장의 인간적인 면모와 더불어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진단, 작가의 문학관도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글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작가의 말 4

1부 섬으로 가다 9
섬으로 가다|인간과 자연의 대화|벌레의 목숨|섬의 떠돌이 개|나의 흉작|채소의 꽃, 풀의 꽃|산속의 재첩|귀여운 도둑|떠돌이 닭|밀의 추억|이별의 아픔|시마차비?|손바닥에 앉는 닭|하구레구모, 섬에 오다|마을경제 1|마을경제 2|채소의 혼|피꽃|생명을 먹다|벼를 베고 덤으로 얻은 것|자급자족론|화려한 가을의 어느 하루|마을 아이들|우리 집 식탁|타이의 농촌에서|나의 과실치사죄|겨울의 진수성찬|매화꽃이 피다|북쪽 지방에서|폭풍이 물러가다

2부 태양의 눈 101
어린이 시에 보이는 아버지상|우리가 말하는 애국심|누구를 위한 교과서인가|여행 중에 발견한 양지|화가 치미는 세 가지 이야기|다시, 누구를 위한 교과서인가|어린이의 먹거리와 희생되는 어린이|내 마음에 남은 사람|나의 작품과 사투리|장애인의 ‘삶’에서 배우다|오키나와 풍진아(風疹兒)|에노켄은 나의 문화였다|목소리

3부 아이들에게 배운다 179
교육 속의 절망과 희망|죽고 싶어 하는 아이일수록 살고 싶어 한다|깨지다|남과 여|관점|보복과 본보기의 시대|A의 작은 고민|자립할 권리|S라는 아이에 대해|아이들과 함께 성장하자|희망으로 가는 다리 ? 나의 어린이원론

4부 문학과 나 265
책 한 권 없는 인간의 책 한 권|[기린]이여, 일어나라|머잖아 지구를 묶어버릴지도 모르는 그림 -조 신타 씨에 대해|화려한 투명 인간의 화려한 고독 - 다니카와 슈타로 씨에 대해|세이조 씨의 유토피아 - 다시마 세이조 씨에 대해|얄미운 사람- 데라무라 데루오 씨에 대해|어린 영혼의 저항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가 의미하는 것|‘삶’의 근원 - 태양의 아이 를 이야기하다| 태양의 아이 집필을 끝내고|상상력이 사실을 뛰어넘을 때